깨져버린 미래: 2009년 코펜하겐 UN기후변화 정상회의가 실패한 이유
저자: BBC News
2009년 코펜하겐(Copenhagen)에서 개최되는 UN기후변화회의(UN Climate Summit)에는 약 4만5,000명이 참가했습니다. 그리고 대다수의 참가자는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전세계적인 새로운 합의가 필요하다는 점에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기후변화 정상회담은 미국을 비롯한 5개국 합의안이 기초가 된 ‘코펜하겐협정(Copenhagen Accord)’에 유의하기로 합의한 것 이외에 아무런 성과 없이 종결되었습니다.
그리고 전세계 193개 참가국은 2010년 부각되어야 할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강력한 합의안 없이 코펜하겐을 떠나야 했습니다.
BBC News 환경 특파원 Richard Black은 이번 코펜하겐 기후변화회의의 실패 요인을 8가지로 분석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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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합의를 원하지 않는 선진국
코펜하겐에서 열린 UN기후변화회의가 끝날 때까지, 모든 참가국은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주도권을 쥐고자 하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실제 회의를 살펴보면, 참가국은 근본 쟁점에 대한 객관적 논의보다 서로의 입장을 고려한 타협을 보기 마련입니다.
실제로 1997년 교토회담(Kyoto Summit)에서는 선진국은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광범위한 논쟁을 벌였으며, 결국 각국의 상황에 맞는 협상이 타결되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코펜하겐 회의는 교토회담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참가국 모두가 발언을 했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다른 국가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회의 종반부에 미국(USA)과 BASIC 국가들[브라질(Brazil), 남아프리카 공화국(South Africa), 인도(India), 중국(China)]은 마지막 순간에 밀실에서 타결을 보았습니다. 이는 코펜하겐 회의를 위해서 준비해온 9개월에 걸친 노력뿐만 아니라, 2년 전 모든 참가국가들이 합의 했던 발리행동계획(Bali Action Plan) 을 무시하는 행동이었습니다.
지난 몇 년간, G8(G8: Group of 8), 주요경제포럼(MEF: Major Economics Forum), 그리고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포럼(APEC: 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forum)등에서 기후 변화에 대한 성명이 발표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성명들은 공식적인 협상을 거치지 않았으며 법적인 효력 또한 없습니다.
이러한 법적 구속력을 가지지 않는 합의가 강대국들(미국과 BASIC 국가)이 선호하는 형태의 합의입니다.‘코펜하겐협정(Copenhagen Accord)’의 협의 내용은 G8이나 MEF 선언문을 인용해 만들어 진 것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몇몇 문단들은 단순히 복사와 붙여 넣기의 방식을 통하여 옮겨졌습니다)
이번 코펜하겐협정을 통해 이러한 합의가 강대국이 선호하는 형태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강대국은 각자 미리 준비된 성명을 발표하는 비공식적인 환경을 선호합니다. 이는 곧 진정한 의미의 협상이 이루어질 수 없으며, 어떠한 내용도 법적인 구속력을 가질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2. 미국의 정치 시스템
UN 회담에 참가하는 대부분의 국가들은 단일의 지휘 체제를 갖추고 있습니다. 따라서 대통령이나 총리의 발언은 국가 행정부 전체를 움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는 다릅니다. 미국의 대통령은 의회가 지지하지 않는 한 어떤 것도 약속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Barack Obama)는 미국의 입장 개진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으며, 이는 다른 국가들과의 협상 진행에 있어 큰 장애물이었을 것입니다.
국제적인 시각으로 보았을 때, 미국은 실질적으로 두 개의 정부를 가지고 있으며, 각 정부는 상대방의 의견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미국 헌법 제정자들이 양당제를 채택했을 때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미국은 양당제로 인해 여러 협의 과정에서 내부적으로 분열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입장과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데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미국과 협상을 진행하는 다른 국가들 역시 어려움을 겪는 실정입니다.
3. 시의 적절하지 못한 상황
비록 발리행동계획이 채택된 지 2년이 지났지만, 현재는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Barack Obama)가 백악관에 입성하고, 탄소배출 감축 개혁을 시도한지는 1년밖에 되지 않은 시점입니다.
또한 현재 오바마 대통령은 대규모 건강보험 개혁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온실가스 감축과 건강보험 개혁 모두 현재 오바마 대통령에게 쉬운 과제는 아닙니다.
코펜하겐 정상회담이 1년 늦게 개최되었다면, 오바마 대통령은 좀 더 굳건한 기반을 위에서 입장 표명을 할 수 있었을 것이며, 차후 계획에 대한 좀 더 명확한 지표를 제시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지표는 다른 국가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개진하도록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어떠한 제안도 내놓지 못하였으며, 다른 국가들도 이에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4. 주최국
여러 측면에서 덴마크(Denmark)는 훌륭한 정상회담 주최국이었습니다. 코펜하겐은 친근하고 발전 가능성이 높은 도시이며, 연계 교통 수단이 잘 갖추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벨라 센터 푸드 아울렛(Bella Cneter Food Outlets)은 오랜 협상 기간 내내 열려있었습니다.
그러나 덴마크 총리Lars Lokke Rasmussen의 정부는 상황을 매우 나쁘게 만들었습니다.
정상회담이 시작하기도 전에, 미국, 영국을 비롯한 일부 선진국들이 중요국을 선정하기 위해 비공식적으로 합의문 초안을 작성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이로 인해 기후변화로 인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으나 그 목록에 들지 못한 모든 국가들은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정상회의가 열리기 몇 주전 덴마크 총리 Rasmussen과 덴마크 기후국(climate department) 장관 Connie Hedegaard 사이의 내부 갈등에 대한 소문이 무성한 가운데, 덴마크 수석 협상자 Thomas Becker 가 파면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개발도상국 협상자들과 덴마크의 수석 협상자 Thomas Becker가 쌓은 신뢰도 무너졌습니다.
회의 진행 절차 면에서 보면 이번 코펜하겐 기후변화회의는 촌극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의장국인 덴마크는 협상을 마무리 짓기 위해 서둘러 일을 처리하는 데만 관심이 있었고, 이는 협상 테이블에서 적법한 합의에 도달할 것을 기대한 개발도상국의 잇따른 항의를 초래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협상 중 휴회는 다반사였습니다.
첫 ‘덴마크 문건(Denmark text) 에 대한 혹평에도 불구하고, 덴마크는 새로운 문건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여러 차례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덴마크 정부가 독단적으로 처리할 문제가 아닌, 다양한 이해 관계를 가진 참가국 전체의 몫일 것입니다.
중국측 수석 대표는 코펜하겐 회의가 시작한 이후 보안 문제를 이유로 삼일 동안이나 행동에 제한을 받았습니다. 이 문제는 회의 첫날 즉시 해결되어야 했지만 해결되지 않았고, 그 때문에 중국 대표단은 크게 반발했습니다.
고위급 회담을 주도한 덴마크 총리 Rasmussen는 기후변화협약뿐만 아니라 관련 정책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경험 있는 회의 참가자들은 이제껏 이렇게 서투르게 진행된 UN 정상 회담은 없었다고 전했습니다.
이번 기후변화회의를 덴마크와 덴마크 총리 Rasmussen에게 영예를 안겨줄 기회로 생각했을 총리실은 반드시 협상의 결론을 내리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결론은 기후변화 해결을 위한 ‘덴마크식’ 해결책에 불과할 것입니다.
참가국 대부분은 코펜하겐과 이곳 사람들을 애착을 가지고 기억할 것 입니다. 그러나 역사는 코펜하겐을 덴마크 정부의 운영 미숙과 과욕이 부른 실패한 국제 회의로 판단할 것 입니다.
5. 날씨
이번 코펜하겐 총회에서 기후변화에 회의적인 견해로 인한 동요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회의 마지막 며칠간 코펜하겐을 강타한 극심한 추위와 도심에서 벨라 센터(Bella Center)를 잇는 도로를 뒤덮은 폭설에 대해 “기후변화에 따른 위협”의 과학적 신뢰성에 관해 의심하는 어떤 회의적인 대표도 자신의 입장을 확신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래 지난 2000-2009년은 가장 따뜻했던 10년이었으나, 세계기상기구(WMO: World Meteorological Organization)는 북아메리카 일부 지역은 제외된다고 보도하였습니다.
만약 미국이 지구 반대편에서 겪고 있는 타는 듯한 더위와 계속되는 가뭄, 그리고 불안한 강우 패턴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면, 지난 몇 년간 기후변화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도록 미국 국민들은 상원의원들을 좀 더 압박했을지 의문입니다.
6. 24시간 뉴스 보도 체제
이번 기후변화 협정이 날조되고 발표된 과정은 24시간 뉴스 보도 체제의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에 대한 정확한 평가나 균형 잡힌 설명보다 단순히 생중계로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24시간 뉴스 보도 문화의 결과물일 것입니다.
오바마 정부는 이러한 뉴스 보도 체제에 대한 과감한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합의문이 채택되었다는 사실을 그 누구도, 심지어 정상회의에 참가한 정부들조차 알기 전에 생중계로 공표했습니다.
그 소식은 오바마 대통령과 함께 코펜하겐을 방문한 백악관 기자들에게 가장 먼저 전해졌습니다. 미안한 말이지만, 백악관 기자들은 벨라 센터에서 앞서 2 주를 보낸 환경 전문가들만큼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기엔 부족했습니다.
물론 이 사건 이후 기자들은 세부사항에 대하여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기후변화 회의의 의제는 이미 정해진 뒤였습니다. 의제와 관련된 기사가 발표되자 특별히 기후변화 문제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조차 미국이 발휘한 글로벌 리더십으로 기후변화협상이 타결되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24시간 생방송 뉴스 보도 체제가 코펜하겐 협정을 결정짓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생방송 뉴스가 세계에 오바마 대통령의 승리를 말하는 동안 백악관은 코펜하겐 협정의 주역인 오바마 대통령에게 철저한 검증 절차를 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7. 유럽연합(EU)의 정치
금요일 밤 두 시간 동안, EU는 ‘오바마 합의문’의 운명을 손에 쥐고 있었습니다. 이날 오후 논란을 불러일으킨 외교적 쿠데타로 인해 참가국 정상들은 충격에 휩싸였고, 사건을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적절한 대응 방안을 강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습니다.
이 때 EU가 합의문에 대한 지지를 거부했더라면, 대부분의 개발도상국들 또한 같은 방식으로 대응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합의문은 단지 몇 국가 간의 비공식 문서에 그쳤을 것이고, EU의 최소한의 요구에도 미치지 못한 실패한 정상회의의 상징으로 기록되면서, 다음 번에는 반드시 영향력 있는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EU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 주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일부 정상들이 구속력이 약한 협약보다 차라리 협약을 맺지 않는 편이 낫다고 이전에 이미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EU는 왜 그런 무력화된 문서를 지지하였을까요?
그 해답은 아마 아래 제시된 세 가지 요인들에 있을 것입니다.
언제나처럼 정치적인 요인이 강합니다. – 즉, EU는 절대 미국, 특히 현 오바마 정부에 반대하지 않으며, 자신들이 내놓은 정책이 언제나 성공할 것이라고 간주합니다.
EU의 확대로 EU내에서 온실가스 배출량 제한 필요성에 동의하지 않는 정부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프랑스(France)와 영국(UK)과 같은EU내 주요 국가들이 협상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상당한 정치 자금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에티오피아(Ethiopia) 대통령 Meles Zenawi와의 재정 협상을 매듭짓고, 일이 해결되는 듯 보였던 목요일 외교적 압박을 가했습니다.
EU는 미국과 중국측 대표들을 위한 협상 환경을 조정하고, 미국, 중국과 함께 동등한 파트너로서 협상을 이끌어 가길 바랬습니다. 그러나 EU는 EU의 존엄성을 떨어뜨리는 방법으로 발표되지 않았으면 했던 결과를 묵인했고, 이는 결국 EU의 위상을 떨어뜨렸습니다.
8. 시민사회단체들의 잘못된 전략
전 세계에서 모인 시민사회단체들이 최대한 바람직한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 ‘메시지 전달’에 총력을 기울이는 동안, 엄청난 양의 메시지와 회담 내용들이 회의 기간 내에 은밀히 처리되었습니다.
넓은 관점에서 보면 시민사회단체들의 메시지 전달은 중국(China), 인도(India), 브라질(Brazil) 그리고 다른 주요 개발도상국들이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에 동의한 점에서 성공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민사회단체들은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 캐나다(Canada), 러시아(Russia), EU에게 보다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해야만 했습니다.
현재 사후 평가가 진행 중이고, 모든 참가국들이 평가의 대상입니다. 미국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의회 통과법으로 인해 여전히 오바마 대통령에게 영광보다는 모욕을 주고 있지만, 법 개정의 여지는 존재합니다.
중국, 인도, 그리고 신흥 개발도상국들이 원하던 합의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이 국가들이 이제 국제사회에서 어떠한 위치를 차지할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들이 원하는 유리한 결과를 얻어낸 중국이나, 국제 사회에서 영향력이 큰 사우디 아라비아(Saudi Arabia)에서 여러분들은 어떻게 캠페인을 벌이시겠습니까?
서방 선진국의 불합리한 주도권에 반해 전통적으로 개발도상국을 지원하는 기구들에게 이러한 상황은 특히 쉽지 않습니다.
코펜하겐 기후변화 정상회담 이후, 하나의 개발도상국 세계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개발도상국들 역시 각자의 정치 경제적 상황에 맞춰 각기 다른 전략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민사회단체들에게 이러한 새로운 국제 질서에 대응하는 것은 도전 과제입니다. 왜냐하면, 국제 사회의 질서란 오랜 시간 세계를 지배해 온 강대국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