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아프리카의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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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Maaza Mengiste

출처: http://bit.ly/1liVzZ


한 장의 사진에 전 세계가 1993년의 수단을 주목했습니다. 하지만 가자 지구와 말레이시아 항공기 MH17편 추락 소식에 아프리카의 공포는 이내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사진 속 조그마한 소녀는 고개를 땅에 떨군 채 웅크리고 앉아 있습니다. 굶주림에 야위어 갈비뼈를 선명하게 드러낸 왜소한 몸은 그저 힘겨워 보입니다. 그리고 그 뒤 소녀에게서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대머리 독수리 한 마리가 시선을 고정한 채 소녀가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작고한 포토저널리스트 케빈 카터(Kevin Carter)가 1993년 남수단(South Sudan)에서 찍은 이 사진이 발표되었을 당시 대중들의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대중들은 곧장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에 윤리적 문제를 제기했으며 남수단 지역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문의가 쇄도했습니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케빈 카터의 ‘독수리와 소녀’는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남수단의 끔직한 기근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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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수단이 기근을 겪을 당시 케빈 카터(Kevin Carter)가 포착한 사진입니다. 이 사진에 대중들은 즉시 분노하였습니다.


1993년 수단이 기근을 겪을 당시 케빈 카터(Kevin Carter)가 포착한 사진입니다. 이 사진에 대중들은 즉시 분노하였습니다.

굉장한 파급력을 불러 일으킨 이 한 장의 사진은 ‘굶어 죽어가는 소녀가 독수리의 먹잇감이 될 위험천만한 상황에도 카터는 사진을 찍는 데만 몰두했다’ 라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동시에 이 사진은 기근에 대한 국제여론을 환기시켰습니다.

독립 후 3년이 지난 현재, 세계에서 가장 어린 국가 남수단은 정부군과 다양한 저항 세력간의 갈등으로부터 야기된 식량 기근에 또 한번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400만 명의 남수단 국민들은 심각한 식량 부족을 겪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150만명의 이재민들이 있었고, 5만명의 아이들이 영양 실조로 목숨을 잃게 될 위기에 놓여있습니다. 남수단(South Sudan)의 식량 기근 사태는 오늘날 가장 급격하게 쇠퇴하는 인도주의적 위기라 일컫어집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는 가자 지구의 자극적인 뉴스와 말레이시아 항공편 MH17의 비극적인 추락 소식 등으로 국제여론은 남수단의 기근에는 관심이 멀어져 있었습니다.

남수단 외에도 중앙아프리카공화국(the Central African Republic), 콩고민주공화국(the Democratic Republic of Congo)과 같은 아프리카 내 위기에 처한 국가들이 있습니다. 세 국가들 모두 상황의 심각성에 비해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하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습니다. 저널리스트들은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정부 기관의 부재가 인도주의적 위기를 불러 일으키는 데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지방 방송국의 재정적 어려움과 사태의 내막을 들여다볼 수 있는 저널리스트 수의 감소 등을 문제점으로 제기하기도 합니다. 결국 시간도 돈도 사람도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저 단순히 우리가 아프리카의 비극에 질려버린 것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기사 보단 사진에, 내용보단 시각적 자극에 마음이 동하는 것이라면, 그건 아마도 우리가 이미 아프리카의 아픔에 귀 기울이는 것이 싫증난 것일 겁니다. 비극적인 남수단의 인종 대학살과 르완다(Rwanda)와 다르푸르(Darfur)의 대학살을 확연히 구분 지을 수 있어야 합니다. 아사의 경계를 오가는 남수단의 아이들이 소말리아(Somalia)와 에디오피아(Ethiopia)의 식량 기근과 동일시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쉽게 아프리카 내 각 나라들을 한 그룹으로 분류하고, 지역 및 그룹의 경계를 모호한 상태로 인식합니다. 각 나라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은 각각 다른데 우리는 그저 아프리카라는 대륙에서 부르짖는 아픔을 하나의 메아리로만 받아들입니다. 그로 인해, 반복해서 들려오는 소식은 진부한 이야기로 전락하게 됩니다. 우리가 현재 마주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잘못된 시선으로 얼룩져버린 아프리카의 모습일 것입니다.

2014년 1월 시리아 감옥에 수감된 후 사망한 5만 5천명의 수감자들 사진 중 일부가 대중에게 공개 되었습니다. 온라인 링크를 열어 사진을 보려 했지만 처음으로 뜨는 사진 외엔 도저히 보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유일하게 본 첫 번째 사진엔 야윈 청년의 주검이 담겨 있었습니다. 몸 전체가 굶주림에 말라있었고, 무엇보다도 그의 가슴팍 아랫부분은 차마 공개될 수 없는 수위였기에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나치 수용소 수감자들과 비교될 만큼 잔혹한 고문과 집단학살의 참혹함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적인 기록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진들은 몇 달이 채 되지도 않아 대중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버렸습니다. 이 수감자들을 위해서 더 이상 무언가를 해줄 수 없는 허탈함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독수리와 소녀’와 같이 폭력을 담은 사진은 우리에게 잔혹함의 증인이 될 것을 요구합니다. 그 무자비함에 맞서 싸우는 투사가 될 것을 또한 호소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역할이 없을 때 결국 무기력해지기 십상입니다.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혀 있는 시리아 내전은 선과 악을 뚜렷이 구분 짓는 게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이같이 또 다른 처참한 소식들이 들려올 때 대중은 그들이 나아갈 방향이 정해지기 전까지 등을 돌리고 있는 편이 오히려 쉽다 생각합니다. 그래서 대중은 자연스럽게 빈곤과 폭력을 잊어버리길 선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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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찰스 로모동(Charles Lomodong)이 포착한 심각한 영양실조에 걸린 남수단(South Sudan)의 아이가 국경없는의사회(Medicins Sans Frontieres)가 운영하는 클리닉에서 몸무게를 재고 있는 사진입니다.


하지만 어쩌면 혼란스러움과 불확실함이 우리가 느껴야 할 바로 그 감정일지도 모릅니다. 가자 지구와 말레이시아 항공기 추락사고의 적나라한 장면을 담은 사진들을 두고 편집장들과 포토에이전시들이 벌이는 끊임없는 논쟁은 곧 폭력을 담은 사진들을 보고 느끼는 방법엔 올바른 사고의 기준이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일반 대중과 전문가들 모두 지구촌에서 일어나는 폭력의 심각성을 마음에 새기고 공감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며 극복해야 합니다. 우리가 취할 행동과 나아갈 방향이 명확하지 않을지라도 우리가 감당할 몫은 분명 있을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느끼는 마음의 불편함조차도 폭력의 결과물일 것입니다. 이 불편함이 우리를 폭력의 희생자들에게 멀어지게 하는 요인이 아니라, 같은 피해자로 공감하게 하는 동기가 되게 해야할 것입니다.

우리 내면의 지극히 인간적인 반응에 대해 의도적으로 거부 하는 것은 사진 속의 아픈 피해자들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비록 이미 일어난 일을 변화시킬 수 없지만 사진이 전달하는 상징적 의미를 통해 앞으로의 이야기를 바꿀 원동력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남수단(South Sudan), 중앙아프리카공화국(Central African Republic), 콩고민주공화국(Democratic Republic of Congo)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극을 다시 쓸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또 다른 아프리카의 희생자로서가 아닌 존중 받아야 할 한 사람으로 마주할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프리카의 비극을 직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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